'나쁜느무시끼 나한테 걸리기만 해봐가 딱 내 속마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3.21 기억 - 무서웠던 친구 22
생각거리2011. 3. 21. 23:34

큰애가 어제 밤에 xx라는 친구가 무서워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 친구는 유치원 가는 첫날, 유치원 가는 버스 안에서 큰애 눈을 때렸다는 아이다.
담임 선생님이 보신 것도 아니고, 내가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세 명이 쪼르르 앉았는데 그 친구가 큰애 옆에 앉았고,
큰애가 옆구리를 긁는데 그 친구는 자기를 때렸단 생각하고 주먹을 날렸다는 것.
선생님 입장에서는 얘 말도 듣고 큰애 말도 듣고.. 그래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울었다가 전부였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끼리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로
"엄마, xx가 나한테 "까불지 마라"켔어요",
"엄마, 나는 그냥 내 신발 보고 있었는데 xx가 "쳐다보지 마라"켔어요"
"엄마, xx가 자꾸 나한테 하지 말라케요"
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큰애 뿐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도 많이 괴롭히는 것 같았다.
버스 탈 때도(마침 같은 장소에서 버스탄다) 어른들 통제에 따르지도 않고(애 엄마는 애가 차로에 뛰어들거나 말거나..)
줄 서 있는 것도 무시하고 막 밀치고 먼저 가고.. 아, 난 줄 서는거, 이런거 잘 안 하는 사람들 보면 스트레스 넘 받어.. -_-

왓쏘에버, "무섭다"라고 한다, 7살 아이가.
순간 마음에서 뭔가가 욱 하면서 첫 대응을 내가 너무 안일하게 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와
녀석이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다 할까 안쓰럽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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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교육을 시작한 날. 빨간 원 안이 나.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지만.. 사실 학교 다니는거 그리 행복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가야하니까 가는거였지 뭐.. 쩝.



그녀(처음엔 실명을 썼다만 확 트인 인터넷 세상이라 "그녀"라 지칭하기로 한다)를 처음 만난 건 4학년 때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데 마침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 고등학교 후배라나 뭐라나..
양쪽 엄마들이 잘 지내라고 하셨더랬지.
6학년 때와 중 2 때 같은 반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처음부터 무서웠다.
덩치가 나보다 훨씬 더 큰 것도 아니고, 맞은 적도 없는데.. 뭐랄까.. 기에 눌렸다고나 할까?
그 친구가 내게 하는 말들이 무서웠고,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따지면 말문이 딱 막혀버렸다.
결국 비굴하게 들러붙어 딸랑거리는걸로 살 길을 찾았다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내내 불편하고 무서웠다.
오죽하면 아빠 외국으로 발령나셨을 때 그 친구랑 멀리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제일 기뻤을 정도.

5학년 때인가, 4학년 때 인가.. 동생이 사고로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고 큰 수술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자기가 미래를 볼 수 있는데 내 얼굴을 보니까 내 동생이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칠거라나?
지금 생각하면 참 택도 없는 얘기에 바로 콧방귀 흥 끼어주며 "닥쳐!" 할 사안인데 당시엔 그 앞에서 무섭다며 엉엉 울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커튼이 내려져 살짝 어두운 그녀의 방안이.

책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진 오마니 땜시롱
도서관, 그녀네 집 등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그녀의 아빠는 책 읽고 리스트 작성하고 독후감 쓰는 걸 꼼꼼히 체크하시는 분이었다.
그 분 눈에는 "해라해라"해야 겨우 하는 당신 자식과 항상 집에 와 책을 잔뜩 빌려가 읽는 내가 비교가 되셨을터.
하루는 책 빌려가는 날 두고 그녀에게 "세정이 좀 보고 배워라" 류의 잔소리를 하셨는데
그녀가 나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그 큰 눈을 희번덕거리며 "너 때문에 나 혼났잖아! 이제 우리집에서 책 빌려가지마!"
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역시나 지금같으면 "나쁜x, 책 가지고 유세 떨긴.."하고 콧방귀 흥! 뀌거나 혀라도 날름 거렸을텐데
그 때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이후론 그 집에서 책을 빌리지 않았다.

그녀가 유독 좋아했던 듀란듀란.. 사실 나는 그 아이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했고 그래서 팝송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외국에 다녀오고, 귀국 후 우연찮게 연이 닿아 그녀의 집에 놀러갔는데 온갖 비아냥을 늘어놓더니
아뿔싸.. 내가 목표로 하고 있던 대학, 과와 같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에 깨끗하게 그 학교 포기했다.
이 때는 무서웠다기보다는.. 그냥 다시는 엮이기 싫었달까..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우연히 i라는 사이트에서 만나 동창회 때 보게 되었다.
처음 딱 드는 느낌이 '내가 왜 저런 애를 무서워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해 모모 금융 상품에 가입해달라는 부탁에 한마디로 딱 거절하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했고, 그 이후로 다시는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지금은 무서운 건 아닌데..
역시나 별로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동창들의 나에 대한 평가, 예를 들어 "조용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라던가
노래방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고 "6학년 때와는 완전 딴판이다"라는 평가를 듣고서
어쩌면 내가 참 많이 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서운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고 조용하고 차분했던 어린 시절에서
사춘기(라고 특별히 반항을 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를 거치며 싸납고, 독하고, 활달한 나로 바뀐.. 그런?

그러니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몇 해던가...

그래서 나는 친구가 무섭다는 내 아이가 한없이 안타깝고 가엽고 슬프고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일인데 그걸 어찌 해주나...
남편은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인터넷을 좀 뒤져봤다는데
부모가 너무 엄하거나 윽박을 지르며 키운 아이들이 이런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말만이
계속 마음에 남아 더없이 미안하다.

다행히(?) 오늘은 다른 친구들과 싸워서("엄마, 나 이제 ooo, mmm이랑은 다시는 친구 안해!"라니..
이런건 당신들이 이야기 하던 "기집애들이나 하는 짓"아니었던가?! 얜 남자앤데.. 쩝) xx 이야기를 안했다.
덕분에 잔뜩 벼르고 있던 나와 남편은 살짝 김이 새기도..? ㅎㅎ

나 어릴 때, 이런 나 때문에 참 속상해하던 엄마가 떠오르는데
막상 엄마가 된 나는 이런 경우에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ㅎ 언니가 일러준 "나쁜 짓 하지 마"를 연습시켜봤는데 건성건성.

그래도 우리 부부는 "때리고 다니는 아이 부모보단 그래도 맞고 다니는 아이 부모가 낫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p.s. 아무리 그래도 "쟤가 때리면 너도 때려"라곤 못 가르치겠는데 인터넷 상에서 보면
엄마들은 "내 아이만 생각하세요" "쟤가 때리면 너도 때려라고 가르치세요"라고 반응하고
전문가들은 당하는 아이가 직접 "나는 네가 이런 짓을/말을 하는게 싫어"라고 말하게끔 가르치라고 한단다.
참 좋은 우리나라, 가끔 개판인 경우를 보는데.. 원인없는 결과 없다니깐.. -_-
Posted by bibi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