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준 상유를 돌려달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1.02 즐거웠어, 그동안.. 드라마 이야기 14
문화생활2010. 11. 2. 00:29
19강을 마치고 난 기분은.. 음, 뭐랄까.. 허탈함?

솔직하자. 내가 예뻐라하는 이선준 상유가 거의 까매오 수준으로 나왔다, 엥이.
더 솔직하자. 너무나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너무나 단순하게 풀어냈다.

물론 20강밖에 안되는 미니시리즈에 뭐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좀 더 길게 풀어줘야 할 이야기와 짧게 훑고 지나가야 할 이야기의 간극이 너무 컸다
(예를 들어 부용화 얘기가 뭐 그리 길게 나와야 했을까? 반면 홍벽서와 금등지사,
신분 이야기까지.. 이걸 어케 2회에 다 풀 수 있는겐지.. 더구나 신분 이야기 풀어내는건
무슨 학예회 보는 것도 아니고 너무 허탈했다. ㅠㅠ).
막판에 시간에 쫓겨 마구 찍어대는 시험을 치르는 사람마냥, 딱 그런 시험을 치르는 기분.

하지만 또한 인정하자.
이 드라마, 내가 계속 시청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뭐, 여러가지 있었겠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만 되짚어보면 말이지..


성균관에 난입한 병조의 군사들과 성난 성균관 유생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나 대학 다닐 때도 전경의 학내침탈은 금기사항이었다.
나는 소위 386세대가 아니라서(그 유명한(?) X세대~!) 침탈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지만
(그러나 나 대학 다닐 때도 털린 학교들 있었다)
전경들이 학내로 들어온다는 소리에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하고 있던 복학생 선배들이
분노에 차서 학교 지킨다고 교문 앞까지 나온 적은 있었다.

고봉의 분노, 나 절실하게 느꼈달까..


성균관의 문은 대궐이 아닌 반촌으로 나 있다

큰 나무 위에 올라가 걸오가 형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대물에게 해 준 이야기.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봐야 하는 곳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
뭉클했다.
더 좋은 성적을 받고 더 좋은 대학을 나와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해
더 돈 많이 벌고 더 벌고 더 벌어서 나 뿐 아니라 내 자식들까지 떵떵거리게..가
이 사회의 가장 멋드러진 가치처럼 되어 버린 세상에,
그리고 그걸 위해 마구 노력하는건 아니지만 침묵함으로써
그 가치에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뭐랄까, 아팠다.
나 혼자 잘나서 대학생이 된 것도 아니고 나 하나 대학생을 만들기 위해
이 사회에서 내게 베풀어 준 것들을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백성들, 아녀자들에게 알리려면 언문으로 써야지 바보같이...

홍벽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걸오의 질문에 윤희가 답한 말이다(확실한 대사는 기억이.. -_-).
사실 홍벽서가 뭘 이야기 하는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금난정권 언급-폐지 씬 제외)
금등지사에 대해 언급하기엔 백성들과는 핀트가 안 맞는다는 생각도 있다만
여하튼.. 내 생각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기준을 잡아 맞춰줄 필요가 있다.

대자보도, 논문도, 일반 학우,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 노력을 하였으나 나는 그에 미치지 못해 실패하였다.
생각은 미쳤는데 지식이 짧았다고나 할까? 뭐, 후회는 없으나 부끄럽긴 매 한가지다.
논문, 특히. 그래서 더 공부할 생각도, 미련도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남자들이 쭉 만들어온 이 세상은 왜 이 모냥입니까?!

윤희가 정약용에게 한 말이다(역시나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ㅠㅠ).
괜시리 통쾌했다.
내가 여성이라서? 아니, 나는 윤희와는 다르게 왠만한 남성들 한 만큼 공부도 했고
그들만큼 놀기도 했고 마시기도 했고 먹기도 했고(먹는 건 어쩌면 더 많이.. ㅠㅠ)
고민도 했고 행동도 했다.
하지만..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아니 그 무엇이라도 억압이 된 것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자신을 단련시키는데 그런 한마디 날리는 통쾌함, 그런거다.
메롱~하듯이 말 던지고 나가는 윤희의 뒷모습과 한 방 엊어맞은 듯한,
그러면서도 허허 웃는 정약용 슨생의 표정이 깨알같이 재밌었던,
내가 좋아하는 몇 몇 장면들 중 하나.


다른 명대사들은 여기저기서 많이들 봤을테니,
나는 내 마음에 콕 박혀서 지금 당장 막 생각나는 대사나 장면만 적어봤다.
그리고 이런 깨알같은 재미, 갑자기 옛 생각나는 장면들 때문에
이 드라마를 그토록 애정하면서 지켜봤나보다.

이제 딱 한 강 남겨놓은 지금.
대충 스포도 읽고 나니 더더욱 특별히 기대하는 것은 없으나
(하지만 내일은 이선준 상유 좀 더 봤으면.. ^^)
그냥 내 푸르렀던 청춘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음에
그 가치를 두고 싶다.


아, 뭔가 처음 글쓰기 시작할 때는 생각이 많았는데
옆에서 남편이 자꾸 말 거는 바람에 다 날라갔다.
뭐, 내가 늘 그렇지, 뭐.. 쩝.
Posted by bibi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