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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30 안녕, 얘들아... 16
생각거리2011. 6. 30. 18:37

귀국해서 오늘까지 동네 초등학생들 모아 영어 그룹과외를 했더랬다.
재밌었고 힘들었고 귀여웠고 지긋지긋했으며 사랑스러웠고 답답하기도 했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안녕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기 같았는데 어느 덧 사춘기를 앞두고 있는 아이들.
그동안 애써 지식을 넣어주려고 노력했는데 머리 속에 잘은 들어가 있는지
다른 곳에 가서 구박받거나 멸시는 당하지 않을련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뭐, 최선을 다했다. 녀석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마지막 날이라고 애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것들도 선물로 앵겨주고,
나 수업하는 동안 동우 봐주시던 분께도 간단한 거 하나 앵겨주고,
피자랑 음료수도 쏘고, 그러면서도 얼마 안 남은 책 다 떼서 보냈다.
오죽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동휘가 "엄마, 오늘같은 날은 게임을 해야지 공부만 해요?" ㅎㅎ

그동안 사실 제일 미안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동휘다.
대륙간 이동을 해 와서 "엄마, 우리 집에 얼른 가자"고 칭얼대던 48개월 동휘는
50개월에 처음 엄마랑 떨어져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갔는데
엄마가 일한다는 이유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반에 있어야 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면서 스스로 종일반이 아닌 대안을 가져와(미술학원) 내놓기까지
1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엄마 수업시간 때문에 1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홀로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했던 아이.
그 시간들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엄마가 더 너한테 관심을 보일께.
그런데 그게 네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으흐흐흐흐~~~~~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참 아쉬웠던 것은
아이들이 너무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생각할 시간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것으로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내 머리 속을 한 번이라도 굴려서 나름의 체계/지식을 세워야 하는데
그냥 떠넣어주는대로 덥썩덥썩 받아 넣기에 바쁘다보니 사람이 아니고 기계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선생님, 그냥 답을 가르쳐주시면 안되요?"라고 물을 때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안타까웠던지...
그래서 내 자식들은 한꺼번에 많이 넣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다보니 너무 풀어놓나 싶기는 하지만서두.. ㅎㅎ

또 하나.
선생님이 말할 때, 쓸 때, 집중하는 아이가 잘한다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몇 번이나 "지금 누가 먼저 다 푸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선생님이 말할 때, 쓸 때는 선생님을 봐"라고
얘기했지만(심지어 영어로 해서 못 알아듣나 싶어 한국어로도 해줬다) 습관이 되어버리면 어쩔 수 없는 듯.
내가 가르치는 동안만이라도 그 습관을 들여주려 노력했으나 실패한 듯 하다. 그게 아쉽다.

마지막으로, 특히 아이들에게는 함부로 낙인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아무리 가르쳐도 뒤돌아서면 다 까먹는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는데
책 내용만 충실히 하면 잘 따라오고 무엇보다 글을 참 잘 쓰는 아이인가하면
빠릿빠릿하지 못해 답답하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쌓이다보니
찬찬히 따라온 아이의 실력이 이미 이렇게 높아져있었다던가
아무리 외워도 안된다던 아이에게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로 설명을 해주니 쏙쏙 잘 빨아들인다던가
뭐 기타 등등.. 한 면만 보고 평가를 하기엔 참 무궁무진한 것이 사람이고 아이들인 것 같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불가능했었을 초등 아이들의 세계를 미리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
이렇게 좀 아쉽고 서운할 때 그만 두는게 좋은거다 좋은거다 좋은거다...

이제 새로운 일을 또 찾아야 할텐데 모쪼록 잘 되길 바란다.
좀 더 용기를 내봐야겠다.

Posted by bibi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