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릴 때부터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경험하고 해 왔다.
그래서인지 남의 여행 이야기도 즐겨 읽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7년 여 전에 읽은 건데 아쉽게도 종이낭비라 생각한 책이었다.
그래서 자주가는 카페 북클럽에서 이 책을 선정했을 때 딱히 땡기진 않았다.
거기다 나는 터키는 가보지도 못했던 곳이 아닌가!
하지만 "3살짜리 아이와 둘이 하는 긴 여행"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뒤치닥거리만으로도 바쁠텐데 남편도 없이 홀로 우찌 여행을!이란 내 편견은
책 몇 줄을 읽으면서 감탄으로 바뀌었고 펜을 들어 밑줄을 그어가며 곱씹어 읽었으며
책을 덮으면서는 "참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겐 못한다"라고 결론을.. ^^;;;
그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철저히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서도
자기가 꼭 느껴봐야 하는 순간에는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내가 너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겠다고 이 돈을 들여,
이 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데려왔건만 너는 왜!!!"라고 하게 되는데(아니면 나만? ㅠㅠ)
그렇지 않은 작가의 모습이 신선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07년에 동휘가 돌 좀 지나 다녀온 토론토의 동물원.
"아들아, 네게 훌륭하다 소문난 동물원에 데려다주겠다"라는 부푼 포부와
이런 모습을 상상하고 갔건만 현실은...
이 보잘것없는(!), 동네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어린이 놀이터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것.
처음엔 "여행이란 이런거지!"라며 탄복하고 자괴감도 좀 들었다만,
차이를 인정하고 나니 책 전반을 즐기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여행가서까지 그 나라의 어두운 면을 보고 싶지 않으며,
그곳의 사람들보다는 유명한 관광지나 아니면 앗싸리 리조트 형태의 휴식처가 좋으며
(그러니까 내게 있어 여행이란 휴식의 의미가 강하다),
돈을 들였으면 그만큼 뽕을 뽑고 와야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에
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책 저자처럼 하는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결론.
그러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멕시코 시티고
애들 데리고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디즈니 월드/랜드라니
나도 참 글 쓰면서도 부끄럽긴 하다.
여하튼, 나는 그리 하지 못하지만 저자의 이런 여행을 응원하고 싶다.
나는 그리 하지 못하지만 저자가 여행 중에 느낀 생각이나 감성엔 푹 빠진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 험한 노동에 늙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거나 나무껍질 같은 손을 지니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P74
나는 여행이라는 스승을 통해, 삶에 대해 더 낮아질 것을 배운다. 엎드려 고개를 숙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지독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는 언제나 더는 내가 나를 낮추고 있지 않을 때였고, 스스로 직립이 피로할 때였고, 피로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P75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문제들은 자꾸 쳐다보고 해결하려 애쓰는 것과 상관없이 아주 느리게, 눈에 띌 듯 말 듯 좋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그 문제에의 처방은 기다림과 되풀이 외에 달리 없다는 것도 터득했다. 이 모든 과정은 아이에게도 내게도 시간과 성숙을 필요로 했다.
P86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할 일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잠시 끌어안았다 놓아주는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최선을 다하면 된다.
P126
세상에는 잘 걷고 달리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절룩이는 사람도 있으며,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손을 잡고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P154
내가 20대였을 때,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자기의 삶을 성실히 영위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30대인 내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것에도 부단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한 노력과 결심히 조용히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P241
그것은 또 내가 어떻게 자랐는가를, 얼마나 많은 미소와 따스한 손길과 보살핌 속에 성장하여 오늘날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인가를 감사히 반추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전에 내가 반추했던 것들이 상처와 얼룩에 대한 기억이었다면, 이후에 나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면서 내가 받은 사랑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비로소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P274
행복의 조건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조건없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무한정 열려 있거나 한없이 낮게 엎드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P278
무엇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