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에 해당되는 글 201건

  1. 2011.09.09 실버등급으로 등업 10
  2. 2011.07.18 절대적 믿음 6
  3. 2011.06.30 안녕, 얘들아... 16
  4. 2011.05.31 5월을 보내며... 18
  5. 2011.04.24 살림에 재미 붙이기 22
  6. 2011.03.21 기억 - 무서웠던 친구 22
  7. 2011.03.11 미쿡나라가 그리울 때 - 스쿨버스 문화 이야기 22
  8. 2011.02.08 1월 정산 36
  9. 2011.01.24 내가 이 사람 팬입니다 20
  10. 2011.01.07 기억 - 책냄새 23
생각거리2011. 9. 9. 00:10
나는 책을 좋아한다.

미국 가기 전까지는 책을 사는 것도 좋아했다.
책장 가득 책을 넣어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았고,
그걸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는 재미도 좋았다.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았고,
책 표지 안쪽에 이 책을 고른 소감을 살짝 적어두는 것도,
그걸 나중에 읽어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앞이 명확하지 않은 유학생활 중,
더구나 책값이 비싼(서점에서 정가로 구매시) 미국에서
내가 원하는 책(대부분 소설책)을 산다는 것은 사치 중 사치였다.
하지만 미국에는 어느 동네를 가도 도서관이 있었다.
아무리 작은 도서관이라도 잘 정돈된 책들과 갖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오죽하면 귀국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도서관일까...

귀국을 하면서 남편이 직장을 잡고, 나도 파트타임으로나마 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내 책을 사는 것은 사치였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몇 달을 고민했다.
이걸 살 것인가, 좀 더 기다려 도서관에 나오면 가 빌려다 볼 것인가를.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급작스럽게 남편이 정규직을 잡았고 이사를 했으며 나는 전업주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책을 사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간 내가 사고 싶었던 혹은 갑자기 내가 사고 싶었던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어
9월이 시작되길 기다렸다가 보란듯이 질렀다.
무려 세 권을.



이 책들이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쓴 책들이라는 것,
내가 7년 만에 내가 내키는대로 주문한 책들이라는 것,
지난 7년 동안 어쨌든 나도 수고했다고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실버 멤버로 등업이 되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책값으로 10만원 이상을 쓴 댓가라고 한다.
뭐, 그 중 50%는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 교재이긴 했지만서두.. ^^;;;
(한마디로 다시 돌려받았다는 이야기)

솔직히 이 등급을 유지할 자신은 없다.
아마도 나는 이번 달의 통큰 소비를 끝으로
또다시 도서관에 열심히 드나들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좋은거다.
새 책을 쌓아놓고 보고 있자니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배가 부른 느낌이 다 들었다.

나란 뇨자,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뇨자~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7. 18. 11:11

29개월이 갓 된 작은애를 지켜보다보면 "적대적 믿음"이라는게 어떤건지 새삼 느끼게 된다.

신날 때도 엄마,
뭔가 하나 이뤄놓고 자랑하고 싶을 때도 엄마,
밖에 나가 손을 잡아야 할 때도 엄마,
배가 고플 때도 엄마,
졸릴 때도 엄마,
책을 듣고 싶을 때도 엄마,
TV를 보고 싶을 때도 엄마,
발톱이나 손톱 가장자리에 삐죽이 나온 삐꾸들이 괴로울 때도 엄마,
기저귀가 가득 찼을 때도 엄마,
아플 때도 엄마,
다리가 아플 때도 엄마,
속이 상할 때도 엄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도 엄마,
흑초나 매실액이 먹고 싶을 때도 엄마,
넘어져 아파도 엄마,
엄마,
엄마
.
.
.

뭔가 부족하거나 넘칠 때, 힘들거나 기쁠 때
"엄마"란 존재만으로도 모든게 해결될거라 생각하는 듯 하다.
하나 둘 씩 녀석이 스스로 해나가는 것들이 늘어가긴 하지만
여전히, 특히 힘들거나 아플 때 떠오르는 존재는 "엄마"인 것 같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이런 절대적 존재가 된다는게 너무 힘들다.
그냥 "반사~"하고 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는 그렇게 머리 갸웃갸웃 해대면서
내 표현에 하나하나 반응을 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그리고 갓 만 6세가 된 큰애.

엄마가 절대적 존재라는 인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막강한 존재라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는 녀석.

아, 뭐 더 써야 하는데 남편이 와서 밥 차려줘야겠다.
일단 여기까지.
나는 엄마인 동시에 아내니까요~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6. 30. 18:37

귀국해서 오늘까지 동네 초등학생들 모아 영어 그룹과외를 했더랬다.
재밌었고 힘들었고 귀여웠고 지긋지긋했으며 사랑스러웠고 답답하기도 했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안녕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기 같았는데 어느 덧 사춘기를 앞두고 있는 아이들.
그동안 애써 지식을 넣어주려고 노력했는데 머리 속에 잘은 들어가 있는지
다른 곳에 가서 구박받거나 멸시는 당하지 않을련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도 뭐, 최선을 다했다. 녀석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마지막 날이라고 애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것들도 선물로 앵겨주고,
나 수업하는 동안 동우 봐주시던 분께도 간단한 거 하나 앵겨주고,
피자랑 음료수도 쏘고, 그러면서도 얼마 안 남은 책 다 떼서 보냈다.
오죽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동휘가 "엄마, 오늘같은 날은 게임을 해야지 공부만 해요?" ㅎㅎ

그동안 사실 제일 미안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동휘다.
대륙간 이동을 해 와서 "엄마, 우리 집에 얼른 가자"고 칭얼대던 48개월 동휘는
50개월에 처음 엄마랑 떨어져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갔는데
엄마가 일한다는 이유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반에 있어야 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면서 스스로 종일반이 아닌 대안을 가져와(미술학원) 내놓기까지
1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엄마 수업시간 때문에 1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홀로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했던 아이.
그 시간들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엄마가 더 너한테 관심을 보일께.
그런데 그게 네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으흐흐흐흐~~~~~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참 아쉬웠던 것은
아이들이 너무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생각할 시간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것으로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내 머리 속을 한 번이라도 굴려서 나름의 체계/지식을 세워야 하는데
그냥 떠넣어주는대로 덥썩덥썩 받아 넣기에 바쁘다보니 사람이 아니고 기계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선생님, 그냥 답을 가르쳐주시면 안되요?"라고 물을 때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안타까웠던지...
그래서 내 자식들은 한꺼번에 많이 넣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다보니 너무 풀어놓나 싶기는 하지만서두.. ㅎㅎ

또 하나.
선생님이 말할 때, 쓸 때, 집중하는 아이가 잘한다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몇 번이나 "지금 누가 먼저 다 푸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선생님이 말할 때, 쓸 때는 선생님을 봐"라고
얘기했지만(심지어 영어로 해서 못 알아듣나 싶어 한국어로도 해줬다) 습관이 되어버리면 어쩔 수 없는 듯.
내가 가르치는 동안만이라도 그 습관을 들여주려 노력했으나 실패한 듯 하다. 그게 아쉽다.

마지막으로, 특히 아이들에게는 함부로 낙인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아무리 가르쳐도 뒤돌아서면 다 까먹는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는데
책 내용만 충실히 하면 잘 따라오고 무엇보다 글을 참 잘 쓰는 아이인가하면
빠릿빠릿하지 못해 답답하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쌓이다보니
찬찬히 따라온 아이의 실력이 이미 이렇게 높아져있었다던가
아무리 외워도 안된다던 아이에게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로 설명을 해주니 쏙쏙 잘 빨아들인다던가
뭐 기타 등등.. 한 면만 보고 평가를 하기엔 참 무궁무진한 것이 사람이고 아이들인 것 같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불가능했었을 초등 아이들의 세계를 미리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
이렇게 좀 아쉽고 서운할 때 그만 두는게 좋은거다 좋은거다 좋은거다...

이제 새로운 일을 또 찾아야 할텐데 모쪼록 잘 되길 바란다.
좀 더 용기를 내봐야겠다.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5. 31. 00:51

참 이상한 한 달이었다.

뭔가 무지하게 바쁘면서도 하루를 돌이켜보면 한 일도 제대로 없고,
몸도 마음도 다 피곤한데 돌이켜보면 널부러져 있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은, 그런.

음.. 이런게 우울증인가?

한동안 또 그랬다.
딱 무슨 노래 가사처럼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목표도 없이 목적도 없이 부표도 없이 바다 한가운데를 떠도는 돗단배같달까?

뭐, 그래도 대략 5월을 정리해보자면...


1. 좀 느슨해진 살림살이

4월엔 아주 훌륭하게 외식을 줄이고 집밥 먹기를 실천했는데
5월엔 그게 좀 느슨해졌다.
외식을 줄이면 생활비가 좀 덜 나갈거라 생각했는데 왠걸.. 별 차이가 없더라는. -_-
그래서 (4월에 비하면 막가파 정신으로) 힘들면 사먹기도 하고 그랬다.

문제는 한 번 외식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밥 해먹기가 더 귀찮아지더라는 것.
이게 정말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6월엔 다시 4월처럼 살아보고자 한다.
뭐, 덜 벌면 덜 써야지.

차만 타면 "나는 집에 있으면 안되요?"라고 묻던 동휘가 자진해서
"날도 좋은데 우리 어디 좀 가면 안될까요?"라고 물을 정도로
집에만 콕 박혀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가까운 밀양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2. 문화생활

그 흔한 영화도, 뮤지컬도, 콘서트도 없었다(애들 데리고 뭘? 흑..).
하지만 우리는 대백 플라자라는 곳의 심지어 갤러리에 다녀왔다.
그림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나로서는 갤러리에 발걸음 한다는 것 자체가
연중행사를 넘어 거의 인생중행사? 쩝..



큰애가 제 33회 대백 어린이 미술 공모전에서 유치부 특선상을 받아서
(어머어머 놀라지 마시라. 대상, 금상, 은상, 동상 다음에 특선이다)
대백 플라자 갤러리에 전시되는 영광(가문의 영광이다. ㅋㅋ)을 얻었다.
어린이날 아침 일찍부터 가서 사진 찍고 곰새 돌아오는 새끼줄.

애들 사진의 배경이 되는 그림이 동휘가 그린 그림이다.


3. 이사준비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내놨다고 한다.
계약은 8월 중순까지인데 벌써부터 집 보러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사람들이 온다.
이거 꽤나 귀찮네.. 쩝.

그래서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내가 지금 사는 동네는 집값(매매, 전세, 월세 모두)이 꽤 올랐다.
지방 소도시라고 우습게 봤다가 큰코 다칠 지경.
거기다 가격이 오른 이유 중 하나가 동네 초등학교 때문이란다. -_-
길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는 꽤 되는데 초등학교를 짓겠다고 벌써부터 얘기했으나
(심지어 내년부터 학생들을 받겠다고) 개교는 커녕 아직 삽질도 안 한 듯.
그러다보니 우리집 근처의 초등학교는 포화상태.
결국 길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을 좀 더 먼 동네 학교로 보낸다고 하니
아예 이 동네로들 이사를 많이 오는 모냥.
우리동네로 치자면.. 그러니까 경산의 대치동이란 말이지.. 쩝.
(나 경산 잘 모른다. 그냥 내가 들은게 그랬다)

아.. 내년에 초등학교 가는 큰애만 아니라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울텐데
동네도 익숙하고 친구들도 꽤 생긴 상태에서 다른 동네를 알아보자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큰애가 너무 마음에 걸린다 말시.

이웃 아줌마들은 얼른 부동산에 문의해보라고 난리들인데
막상 나는 미루고 미루고만 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6월로 미룬 상태.


4. 그래서 나는?

페북에는 이미 써놨다만, 이제 슬슬 내 삶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든다.
그래도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인지라
내 생각만 할 수는 없을 듯.
가능하면 지금 내 상황에서 아주 조금만 더 욕심을 내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
지난 몇 주간 고민만 많았는데 그래도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보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뭘 해야할지, 윤곽이 좀 잡히는 듯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목표설정, 목표달성, 계획 등등과 의도적으로 멀어지고자 했으나
역시 그런 것들이 있어야 정리가 되는 듯 하다.
큰 덩어리를 만들어놨으니 이제 이걸 잘 다듬어서 볼만한 조각을 만들어봐야겠다.

아울러 뚱뚱한 엄마가 유치원에 왔다가 자기 친구들이 놀릴까 걱정이라는
큰놈의 폭탄 발언 때문에라도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해보겠다 이기야
(위로하지마! 더 슬플거야! 위로하면 내 뱃살 다 자기한테 간다~).
나는 동네 산책도 힘들고, 수영은 싫고(물속에서 노는건 좋으나 앞뒤 시간이 싫다 이거지),
역시 gym 등록해서 트레드밀에서 열심히 걷는데 딱 적성에 맞아.
결국 돈 쓰겠다는 이야기.


아, 간만에 블로그에 글 쓰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글 쓰다 졸리다...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4. 24. 22:27
처음 4월을 시작할 때만 해도 참 막막했는데
4월을 거의 다 보낸 지금 스스로 뿌듯하다.

4월 4일 이후로 지금까지 외식은 딱 두 번.
일주일에 서 너번씩 외식/시켜먹기를 하던 지난 달과 비교해
괄목할만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대신에 장보는데 일주일에 평균 15만원 정도가 들긴 하지만
한 주가 끝나갈 무렵에 냉장고가 비어가는 재미,
이게 주방살림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렇게 재미를 붙이게 된 데에는
필요없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과
새로 마련한 주방기구들(기구들? 면 삶는 냄비!),
그리고 갈수록 줄어드는 식사준비 시간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미루고 미뤘던 냉장고 정리!
남편이 98% 했다.
너무너무 고맙다.
덕분에 우리집 냉장고 텅텅 비었음요~




Before 사진이랑 비교했어야 "이게 뭐?"라는 사람이 없을텐데..
엠.. 뭐가 자랑이라고.. -_-
여튼, 지금 목표는 이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

아울러

매 식사 후 개수대 상태는 이 정도로 해 두자.

엄마가 가르쳐주신 비법으로 깍두기를 담는 동안(현재 무 절이는 중)
잠깐 글 올리는 중.


p.s. 내가 미국에 계속 살았다면 이런 걱정 안 했을텐데, 한국에 살고 있다보니
아이들 사진 마구 올리는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 사진이 있는 경우
lock을 걸까 하는데..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으신 분?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3. 21. 23:34

큰애가 어제 밤에 xx라는 친구가 무서워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 친구는 유치원 가는 첫날, 유치원 가는 버스 안에서 큰애 눈을 때렸다는 아이다.
담임 선생님이 보신 것도 아니고, 내가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세 명이 쪼르르 앉았는데 그 친구가 큰애 옆에 앉았고,
큰애가 옆구리를 긁는데 그 친구는 자기를 때렸단 생각하고 주먹을 날렸다는 것.
선생님 입장에서는 얘 말도 듣고 큰애 말도 듣고.. 그래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울었다가 전부였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끼리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로
"엄마, xx가 나한테 "까불지 마라"켔어요",
"엄마, 나는 그냥 내 신발 보고 있었는데 xx가 "쳐다보지 마라"켔어요"
"엄마, xx가 자꾸 나한테 하지 말라케요"
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큰애 뿐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도 많이 괴롭히는 것 같았다.
버스 탈 때도(마침 같은 장소에서 버스탄다) 어른들 통제에 따르지도 않고(애 엄마는 애가 차로에 뛰어들거나 말거나..)
줄 서 있는 것도 무시하고 막 밀치고 먼저 가고.. 아, 난 줄 서는거, 이런거 잘 안 하는 사람들 보면 스트레스 넘 받어.. -_-

왓쏘에버, "무섭다"라고 한다, 7살 아이가.
순간 마음에서 뭔가가 욱 하면서 첫 대응을 내가 너무 안일하게 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와
녀석이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다 할까 안쓰럽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


제도교육을 시작한 날. 빨간 원 안이 나.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지만.. 사실 학교 다니는거 그리 행복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가야하니까 가는거였지 뭐.. 쩝.



그녀(처음엔 실명을 썼다만 확 트인 인터넷 세상이라 "그녀"라 지칭하기로 한다)를 처음 만난 건 4학년 때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데 마침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 고등학교 후배라나 뭐라나..
양쪽 엄마들이 잘 지내라고 하셨더랬지.
6학년 때와 중 2 때 같은 반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처음부터 무서웠다.
덩치가 나보다 훨씬 더 큰 것도 아니고, 맞은 적도 없는데.. 뭐랄까.. 기에 눌렸다고나 할까?
그 친구가 내게 하는 말들이 무서웠고,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따지면 말문이 딱 막혀버렸다.
결국 비굴하게 들러붙어 딸랑거리는걸로 살 길을 찾았다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내내 불편하고 무서웠다.
오죽하면 아빠 외국으로 발령나셨을 때 그 친구랑 멀리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제일 기뻤을 정도.

5학년 때인가, 4학년 때 인가.. 동생이 사고로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고 큰 수술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자기가 미래를 볼 수 있는데 내 얼굴을 보니까 내 동생이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칠거라나?
지금 생각하면 참 택도 없는 얘기에 바로 콧방귀 흥 끼어주며 "닥쳐!" 할 사안인데 당시엔 그 앞에서 무섭다며 엉엉 울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커튼이 내려져 살짝 어두운 그녀의 방안이.

책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진 오마니 땜시롱
도서관, 그녀네 집 등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그녀의 아빠는 책 읽고 리스트 작성하고 독후감 쓰는 걸 꼼꼼히 체크하시는 분이었다.
그 분 눈에는 "해라해라"해야 겨우 하는 당신 자식과 항상 집에 와 책을 잔뜩 빌려가 읽는 내가 비교가 되셨을터.
하루는 책 빌려가는 날 두고 그녀에게 "세정이 좀 보고 배워라" 류의 잔소리를 하셨는데
그녀가 나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그 큰 눈을 희번덕거리며 "너 때문에 나 혼났잖아! 이제 우리집에서 책 빌려가지마!"
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역시나 지금같으면 "나쁜x, 책 가지고 유세 떨긴.."하고 콧방귀 흥! 뀌거나 혀라도 날름 거렸을텐데
그 때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이후론 그 집에서 책을 빌리지 않았다.

그녀가 유독 좋아했던 듀란듀란.. 사실 나는 그 아이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했고 그래서 팝송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외국에 다녀오고, 귀국 후 우연찮게 연이 닿아 그녀의 집에 놀러갔는데 온갖 비아냥을 늘어놓더니
아뿔싸.. 내가 목표로 하고 있던 대학, 과와 같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에 깨끗하게 그 학교 포기했다.
이 때는 무서웠다기보다는.. 그냥 다시는 엮이기 싫었달까..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우연히 i라는 사이트에서 만나 동창회 때 보게 되었다.
처음 딱 드는 느낌이 '내가 왜 저런 애를 무서워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해 모모 금융 상품에 가입해달라는 부탁에 한마디로 딱 거절하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했고, 그 이후로 다시는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지금은 무서운 건 아닌데..
역시나 별로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동창들의 나에 대한 평가, 예를 들어 "조용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라던가
노래방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고 "6학년 때와는 완전 딴판이다"라는 평가를 듣고서
어쩌면 내가 참 많이 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서운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고 조용하고 차분했던 어린 시절에서
사춘기(라고 특별히 반항을 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를 거치며 싸납고, 독하고, 활달한 나로 바뀐.. 그런?

그러니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몇 해던가...

그래서 나는 친구가 무섭다는 내 아이가 한없이 안타깝고 가엽고 슬프고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일인데 그걸 어찌 해주나...
남편은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인터넷을 좀 뒤져봤다는데
부모가 너무 엄하거나 윽박을 지르며 키운 아이들이 이런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말만이
계속 마음에 남아 더없이 미안하다.

다행히(?) 오늘은 다른 친구들과 싸워서("엄마, 나 이제 ooo, mmm이랑은 다시는 친구 안해!"라니..
이런건 당신들이 이야기 하던 "기집애들이나 하는 짓"아니었던가?! 얜 남자앤데.. 쩝) xx 이야기를 안했다.
덕분에 잔뜩 벼르고 있던 나와 남편은 살짝 김이 새기도..? ㅎㅎ

나 어릴 때, 이런 나 때문에 참 속상해하던 엄마가 떠오르는데
막상 엄마가 된 나는 이런 경우에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ㅎ 언니가 일러준 "나쁜 짓 하지 마"를 연습시켜봤는데 건성건성.

그래도 우리 부부는 "때리고 다니는 아이 부모보단 그래도 맞고 다니는 아이 부모가 낫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p.s. 아무리 그래도 "쟤가 때리면 너도 때려"라곤 못 가르치겠는데 인터넷 상에서 보면
엄마들은 "내 아이만 생각하세요" "쟤가 때리면 너도 때려라고 가르치세요"라고 반응하고
전문가들은 당하는 아이가 직접 "나는 네가 이런 짓을/말을 하는게 싫어"라고 말하게끔 가르치라고 한단다.
참 좋은 우리나라, 가끔 개판인 경우를 보는데.. 원인없는 결과 없다니깐.. -_-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3. 11. 12:30

큰애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은 우리 아파트 단지와 옆 아파트 단지 중간 길로 작지만 나름 사거리.
단지와 단지를 나누는 길이 왕복 2차선이고 양 단지로 들어가는 들어가는 길이 왕복 2차선이다.
참 안타까운 것은, 특히 그 단지와 단지를 나누는 길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가 돼 있다는거고(그것도 양 차선으로)
심지어는 횡단보도와 연결된, 그러니까 보도블럭이 경사가 진 곳에는 어김없이 보도블럭에 한 쪽 두 바퀴를
턱하니 걸쳐놓고 주차된 차들이 있다는거다.

아침에 큰애 버스를 태우려고 섰는데, 그렇게 왕복 2차선 길에 양쪽으로 차를 대놨으니 보면서도 불안불안.
아니나 다를까.. 차가 섰고, 줄 서 있는 애들 다 태웠는데 한 애가 저 멀리서 엄마랑 뛰어오고 있는거라.
그러니 버스 뒤로 차 한대가 서고, 반대편에선 차들이 밀려서고, 또 양 아파트에서 쏟아져나오는 차들까지
결국 순식간에 그 자그마한 사거리가 엄청 막히게 됐다.

그런데 그 때 한 50대 이상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차 창문을 내리더니 뭐라뭐라 고함을 지르고 크락션을 빵빵
울려대시는거다. 거기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던 다른 유치원 버스도 크락션을 빵빵...
아, 순간 혈압 급 상승하며..


우리 밀크 @ 구리, photo by 동휘
얘는 우리 아빠의 애견, 그러니까 집안 서열상 꼬래비인 주제에 우리 아빠의 큰 딸인 나보다 더 팔자가 늘어졌다.


보통 유치원 버스는 그렇게 정차가 힘들 경우, 그리고 앞쪽에 한가한 곳이 있을 경우 한가한 곳으로 이동해서 정차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엔 차 기다리고 줄 서 있던 아해들이 우르르 뛰어가는데,
비록 왕복 2차선이긴 하지만 찻길을 건너야 한다는거지. 그게 얼마나 식겁하는 순간인지..
(출근시간, 차는 계속 쏟아져나오는데 아랑곳않고 뛰어가는 아해들.. 다행히 우리애는 내 말을 잘 따르는데
더 어린 아해들은 버스보고 뛰느라 옆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거기다 오늘은 앞쪽에도 한가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글 서두에서 버스 도착할 즈음에 불안했다고 했잖아..

아파트 단지 안도 교통 혼잡 때문에 대형버스는 들어오지 말라고,
그래서 왠만한 유치원 버스들은 단지 입구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내려주는데 말이지..
이 경우 제 시간에 도착해 애들 태우고 가야하는 버스가 잘못한거야,
아니면 주차공간도 아닌데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에 촘촘히 주차해 놓은 차주들이 잘못한거야?
내친 김에 하나 더 묻자.
열받고 화나는거, 같은 운전자로 살짝 이해는 하는데(하지만 최양락씨 말대로 "그렇게 바쁘면 어제 출발하지 그랬냐?")
주민 거주지역에서, 빠곡빠곡 몰려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빵빵거리는거는 잘 하는 행동인거야?

아, 나 정말 한국에서 "한국 아줌마"로 적응하면서 나름 즐기면서 잘 살고 있는데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미쿡이 그립고 너무너무 부럽다(재수없다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가 STOP 사인을 올리고 불을 켜고 서면 "양 쪽 차선" 모두 스쿨버스를 지나갈 수 없다.
처음 운전면허 시험 준비하며 그 구절을 읽을 때 얼마나 감동했던지..
그렇지, 애들이 어디로 튈 지도 모르는데, 거기다 내려준 곳에서 그냥 집에 가는 애들도 있지만
길 건너편에 사는 애들도 있으니 애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양쪽 차선의 차들이 서주는게 맞는거지.
그런데 그거 잠깐, 끽해야 1분도 안 서 있었는데 그걸 못 참아서 빵빵거리고 난리를 피우는거야?
애들 보는데 부끄럽지도 않나?

애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분이 안 풀려 씩씩거렸다(버스 떠나고 10초도 안 돼 길 막힌 거 다 풀어졌다).


p.s. 좀 전에 둘째 데리고 마트가서 이것저것 사가지고 오는데 경비 아저씨랑 아줌마들이 주차된 차들 보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대충 들어보니 아줌마들은 부녀회 소속인 것 같더군.
애 자면 관리사무소에 건의 하려고 했는데 안 해도 될 것 같다.
과연 얼마나 단속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여러 사람이 항의를 하다보면 개선이 좀 되지 않을까?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2. 8. 22:27

2011년 계획이랍시고 거창하게(?) 세운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1월은 어떠했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드라마, 그 중에서도 배우 현빈이 나왔던 드라마 위주로 훑었다
라고 한 줄 요약이 가능하겠군.
우리 아빠는 "맨 불륜에 연애에 삼각관계에.. 그런 쓰잘데기 없는거에 시청률 올려주지 말고"
우리 사회, 정치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하고 신경쓰라고(직접 말씀은 안 하셨지만 이 뉘앙스)
당부를 하셨다만.. 아빠, 진정 제게 원하는게 이것이 맞소이까?! 후회하실텐데.. 끌끌.

왓쏘에버, 그렇게 바쁘게(!) 1월을 보내고 나니 남은 건 더 두둑해진 살들이요
뭔가 의미없이 보낸 것 같은 듯한 느낌도 가지게 된다(역시 너무 한번에 몰입하면 안돼).
그래서 찬찬히 살펴봤다.
올해 계획과 1월 어떻게 보냈는지를.


1. 가계부를 착실히 기입한다

착실하게 기입했다.
간만에 엑셀 파일을 만들어 찬찬히.
원래 계획은 매 달 정리해서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냥 한눈에 봐도 대충 그래프가 그려지는 것이...
우리 카드값의 80% 이상이 먹.는.것.에 들어갔다.
먹는 것을 절약하면 지출 자체가 줄게 생겼다.
불필요한 먹거리는 과감히 줄이기로 했다.
그러려면 역시나 주부인 내가 제일 힘들어진다..만, 귀국해 지금까지 외식을 좀 사랑해줬더니
집밥이, 심지어 내가 한 밥이 그리워지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자.


1월의 어느 날, 우리애들 저녁
원래 사진 오른쪽의 해물완자가 위쪽 빈칸에 들어가고 지금 자리엔 국이 들어가는게 정석인데
마침 찍어놓은 사진은 좀 부실하군.
2월부터는 흰쌀밥에서 잡곡밥으로 다시 바꾸었다.
동생과 맞바꾼 밥솥, 괜히 더 비싼게 아니던데? 난 횡재, 그녀는 분개할 듯.


1월의 어느 날, 필 받아 해본 도토리묵 무침
이것처럼 쉬운게 없더구나. 괜히 식당가서 몇 천원씩 내고 시킬 필요가 없겠다.
한국산 도토리묵을 구하는게 관권.
혹자는 도토리묵 가루 구해다가 직접 쑤기도 하던데 미쿡나라 살 때 한 번 크게 망친 후론
별로 다시 시도하고 싶지 않다. 마켓에 가면 널린게 도토리묵인데 왠 가내수공업?


2. 육아일기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쓰자

개뿔.
음.. 페이스북에는 그 때 그 때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올린 적이 몇 번 있었고
읽은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해줘서 더 즐거웠다.
누군가는 만화로 그려 올려보라 조언을 하더만.. 아, 내 그림 실력은 그야말로 괴발개발이라...
그래도 언젠간 노력해보고 싶다. :)
그런데 만화로 그려보려면 스캐너도 필요하고 색연필도 필요하고.. 아, 필요한게 너무 많네?
끄끄끄


3. 도서관 방문을 생활화하자 - 일주일에 한 번은 가자

도서관에 딱 한 번 가봤다.
책 세 권을 빌렸고 한 권은 완독, 두 권은 읽다 말았다.
도서관에 간 건 좋았는데 너무 오랜만에 간 터라 뭘 빌려야 할 지도 하얗고
무엇보다 주차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주차장을 다섯 바퀴나 돌아 겨우겨우 주차를 하다니, 이렇게까지 해야하냐 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꼴랑 1시간이었는데 주차로 근 15분을 낭비했다. ㅠㅠ

뭐, 그래도.. 1월 완독한 책은 총 2권.
빨강머리앤의 작가로 유명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서전"과
드라마로도 흥행했던 지수현의 "내 이름은 김삼순"
끝내지 못한 두 권은 이상우의 "대왕세종"과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월엔 일단 공지영의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을 예정이다.
내가 속해있는 한 카페에서 여럿과 함께 읽기로 했으니, 그리고 당일배송을 받아 조금 읽어본 결과
술술 잘 읽히는고로 성공할 듯. 이 책 덕에 간만에 내 책을 구매하는 경험도 해보았다.
이 외에도 칼촌댁님이 추천해주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읽고 싶은데
도서관 대여 사정 봐서 결정할 일.


4. 외식을 줄이자 - 일주일에 두 번 이하

다섯 가지 목표 중 가장 근접하게 이룬 목표인 듯 하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무엇보다 지겹게만 느껴지는 메뉴가 큰 산인 듯 하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자꾸 시도하기도 힘들고.
거기다 아직 매운 걸 못 먹는 애들 때문에 더욱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도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게 된 계기가
동생 추천으로 구매한 스뎅냄비 덕분인 것 같다.
도구가 좋으니 요리가 조금, 아주 쬐끔 즐거워졌다.
삐까번쩍한 도구들과 부엌이 있다면.. 전문 요리사가 될까? 끄끄끄


5. 인터넷은 하루 두 시간만

뷁!
여튼 컴퓨터를 켜놓으면 안된다.
거기다 드라마 본다고(듣는다고. --;;) 컴퓨터 앞에 더 앉아있었다.
2월엔 기어이.. 인터넷 시간을 줄이리라.
내 인터넷 즐기기를 제일 싫어하는 작은 넘 때문에 가능해질 것도 같다.
즐거워야 할 일 맞..지? ㅠㅠ


여튼..
집중을 하든 뭘 하든 내 할 일, 내가 해야할 일에 좀 더 집중하면 허무함이 덜 하겠지?
2월은, 그것도 이미 반 가까이 지났지만(2월은 너무 짧아) 남은 날들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며...
간고등어 예쁘게 구워놓으니까 이렇게 깃발 꽂은 우리 작은애.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1. 24. 18:05
나는 93학번.
그러니까 93년 여름이면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다.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여름농활을 다녀오고서 한참 교정이 조용했을 때다.
개강 후 딱 첫 주만 애용했던 도서관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서가에 들어가 그야말로 책만 읽었다.
그 중에서도 한 작가의 책만 집중 파서 결국 그 서가에 있는 그의 책은 다 읽었으니
그 작가가 바로 몇 일전에 돌아가신 소설가 박완서님이시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해주면서 "이 분, 내가 팬인데.."했더니 남편이 물었다.
"그래? 제일 기억에 남는 그분의 소설은 뭐야?"
"....................."

그렇다. 나는 그 어떤 책 제목도 생각해낼 수가 없다.
그분이 쓰신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으면서도 책 제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대략의 줄거리들은 기억이 나면서도 어떤 책이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이런 팬이 다 있담?

나이가 들어가면서 쓸쓸할 때, 그 중 하나.


이 사진은 네이버 인명사전에서 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이번 겨울은 참 춥다.
가깝게는 날 참 예뻐해주시던 작은아빠가 돌아가셨고,
내가 존경하던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고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도 돌아가셨네.
Posted by bibidi
생각거리2011. 1. 7. 10:00


Lockwood Library, SUNY at Buffalo

나는 책냄새를 참 좋아한다.

한때는 내가 책벌레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책을 좋아하는건지,
도서관(혹은 책으로 둘러쌓인 아늑하고 따스한)을 좋아하는건지,
책 모으는걸 좋아하는건지,
책냄새를 좋아하는건지 모르겠다.

뭐, 중요한 건 ""이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학교 대표로 뽑혀 ㄱㄴ도서관에서 수업도 듣고 책도 맘껏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혹자는 똑똑한 아이들 혹은 글을 잘 쓰는 아이들 위주로 뽑은 줄 알겠지만
사실 나는 가위바위보 위너였다. 끄하하하하~).
비록 집에서 걸어 20분이나 걸리는, 그것도 언덕 위를 올라야 하는 곳이었지만
(겨울 빙판을 생각해보시라)
아침부터 오후까지 꼼짝없이 도서관에 박혀서 책 읽고 글 쓰고 수업받고 해야했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

20대 후반이 되어서 가봤더니 도서관은 간데없고 독서실이 들어섰.. 슬펐다.

외로웠던 사춘기 때.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던 그 때 내게 위안이 돼 줬던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한국어 책은 없었지만 책은 책이지 않은가!
일단 책냄새부터 마음에 안정을 주었고
도서관 분위기야 만국 공통이니까...
나중에 친구들이 생기고 말도 통했어도 나의 도서관 사랑은 계속 됐다.

큰애를 가졌을 때도 내가 버펄로에서 제일 많이 갔던 곳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울 때면 넓은 창(한쪽 벽은 아예 창)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앙증맞은 크리스마스 장식이며
쌓여있는 하얀 눈이며
꽉꽉 들어찬 책들이며 거기서 풍기는 책냄새며
그리고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홀리 할머니와 수다 떨던 기억이며
큰 홀에서 큰애 13개월 때부터 만 3세까지(만 3세 이후부터는 애 혼자 들어가서)
거의 매 주 미스 루시와 함께 한 스토리타임까지...
한가하지만 심심했던 외국 생활에 활력이 되어 준 장소였다.

아침에 청소하러 공부방(방 하나를 아이들 과외하는 방으로 쓰고 있는데
그래서 책은 그 방에 90% 이상있다)에 들어갔는데
문을 꼭 닫아놔서인지 책냄새가 확~ 나는 것이
문득 마음이 따뜻해져서.. 이거 기록으로 꼭 남기고 싶었다.

아, 장남이 이제 자기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미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네 방으로 내줄 방이 없네. .

Posted by bibidi